마크 랜돌프
넷플릭스 공동 창업자. 초대 CEO. 웹사이트 제작 책임자. 이사회 의사로 활동.
마크랜돌프와 현재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매일 아침 같이 출근하면서 사업 구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랜돌프가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면, 헤이스팅스가 주저 없이 평가하는 식이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온전히 내 것'이라 할만한 사업을 해본 적이 없던 랜돌프는 그저 자기 회사를 시작하고 싶었고, 인터넷으로 무엇인가를 파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랜돌프의 사업 구상 15개월 후인 1998년 4월, 넷플릭스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 DVD 대여 및 판매 서비스를 시작하고, 2002년 5월엔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다.
출시 두 달 만에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낮은 금액으로 인수를 제안하기도 했고 랜돌프는 이 만남을 계기로 매출의 97%를 차지하는 DVD판매를 포기하고 대여에 집중했고, 넷플릭스는 '연체료 없는 월간 이용 서비스'의 대명사가 된다.
넷플릭스는 마크 랜돌프에 의해 기틀을 다졌고 이 책은 그런 그가 작성한 넷플릭스의 성공 이야기입니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내가 넷플릭스의 사업 구상을 이야기하던 밤, 아내 로레인의 입에서 처음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내 한 명이 아니었다. 10명에게서 10여차례 똑같은 말을 들었다. (아내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맨 처음 생각했던 구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몇 년 동안 조정하고, 전략을 바꾸고, 새로운 구상을 떠올리고, 운도 좋아서 성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아무도 DVD를 빌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1년 안에 넷플릭스는 거의 DVD 대여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사람들에게 DVD 대여를 하려면 공짜로 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1년 반 동안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공짜 이용 쿠폰으로 고객을 불러들였지만, 그들이 돈을 내면서 재방문하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지 못해 비용만 많이 들였지 수익을 내지 못했다.
넷플릭스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면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우리는 지적했다. 대여에 집중해야 했다. 1999년 여름이 되지 상황은 한계점에 다다랐다. 나는 점심시간 거의 내내 사무실 옆 공원에서 달리기를 했다. 땀범먹으로 달리다가 사람들이 DVD를 계속 빌려 가게 하는 해결책이 번쩍하고 떠오르기를 기대했다. 그중 떨여버리기 어려운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다. 창고에 들렀다 거의 손도 대지 않고 창고 선반에 방치하고 있는 수천 장의 DVD들을 눈여겨 보았다.
우리는 그 DVD를 왜 창고에 쌓아두고 있지? 고객들이 그 디스크를 보관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들 집에서. 그들 책꽃이에. 고객이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DVD를 가지고 있게 해준다면?
만약 연체료를 없앤다면 어떨까?
뭔가 준비된 고객에게만 의존한다는 게 현재 우리 대여 체계의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았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 며칠 전부터 생각해둔 사람만 우리 사이트에서 DVD를 빌렸다.
아이디어의 핵심 3가지는 다음과 같다.
대여기간 무제한
한달에 4장을 빌린 후 원하는 기간만큼 DVD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고객이 DVD중 한 장만 돌려주면 곧장 사이트를 재방문해서 다른 DVD를 빌릴 수 있다.
연속 배달
사람들은 바쁘다. 영화 감상을 끝낸 DVD를 우체통에 넣은 다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잊어버리기 쉽다. 고객이 반납한 DVD를 받자마자 그 고객 목록의 다음 영화를 자동으로 보내면 어떨까?
월간 이용료
DVD를 원하는 만큼 계속 가지고 있게 하면 고객이 좋아할 것 같았다. DVD를 바꿔줄 때마다 대여료를 내게 하나? DVD를 하나도 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우리는 월간 이용료를 시험해봐야겠다고 결정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찾아낸 꽤 괜찮은 아이디어 세 가지를 하나로 합쳤다.
시험해보니 대성공이었다.
연체료를 없애고, 월간 이용료를 단순하게 매기고, DVD를 연이어 배달하니 사람이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 너무 좋아했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변화로 인한 영향도 측정하고 정량화할 수 있도록 사이트를 설계했다. 사이트를 출시하기 전부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지 익혔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는 비난하는 말이 아니다. 일깨우는 말이다. 격려하는 말이다.
자유와 책임
나는 넷플릭스를 시작할 때부터 모든 직원들을 어른으로 대하겠다고 결심했다. 회사가 직원을 어른으로 대우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볼랜드에서 근무할 때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볼랜드에서 일할 때 직원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지원하는 회사에 걸맞게 온탕도 있었다. 그들이 회사를 험담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그렇다. 회사의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직원들이 정말 만족할까?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함께 꿈을 이루겠다면서 회사에 들어와서 행복하게 일을 할까?'
사람들은 자신을 어른으로 대우해주길 바란다. 그 일에 사명감을 느끼면서 과제를 해내고 싶어하고, 그 과제를 해결할 공간을 원한다. 존경할 만한 틍력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온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공짜 간식이나 탁구대 혹은 언제든 마실 수 있는 고급 음료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자유와 책임이다. 그들은 느슨하게 연결되면서 빈틈없이 맞추어지기를 원한다.
자유와 책임에 거리낌 없는 솔직함이 합쳐진 문화는 마법처럼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신뢰 받을 때 좋아한다. 대부분 회사는 판단력이 부족한 직원들 때문에 결국 근무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하지만 그 때문에 판단력을 갖춘 직원의 불만만 커질 뿐이다.
최고의 성과를 내는 직원들을 화나게 만드는 사소한 제약을 모두 없앨 수 있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엔지니어는 주로 두 가지 질문을 하면서 결정한다.
- 함께 일할 윗사람을 존경할 수 있는가?
- 흥미로운 과제를 맡아서 처리할 수 있는가?
캐나다 원칙
넷플릭스는 처음 12년 동안 미국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했다. 캐나다는 미국에서 가깝고 규제도 까다롭지 않고, 배송비와 운송 비용도 많지 않았다. 계산해보니 당장 수익을 10% 정도 늘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캐나다 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았다. 첫번째 보기보다 훨씬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캐나다에는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지역도 있기 때문에 번역이 골칫거리가 될 수 있었다. 쓰는 돈이 미국과 달라서 가격 책정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게다가 캐나다의 돈도 '달러'라고 부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끔찍하게 혼란스러워질 수 있었다. 우편요금도, 쓰는 봉투도 다르다. 다시 말해 단순해 보이는 일조차 골칫거리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캐나다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그보다 더 간단했다. 캐나다 시장으로 진출할 때 필요한 노력, 인력과 정성을 우리 사업의 다른 부분에 쏟아부으면 사실 10%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캐나다 진출은 단기적인 행동으로 단기적인 이익을 올리는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초점을 흐릴 수 있었다.
집중하라. 이게 성공하는 기업의 비밀 무기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의 일부를 계속 버려야 했다.
'너의 직감을 믿어라. 하지만 시험해보라.'
뭐든 구체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료로 확인해야 한다. 내가 배운 교훈은 이렇다. 꿈을 현실로 만들 때 우리가 휘두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황소고집처럼 끈덕지게 밀고 나가는 일이다. 거절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꿈을 현실로 만들 때 우리가 휘두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황소고집처럼 끈덕지게 밀고 나가는 일이다. 거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도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학을 졸업할 때 광고 관련 일을 하는 게 내 꿈이었다.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는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끈질겼다. 광고대행사 N.W. 에이어의 채용 담당자가 우리 대학에 왔을 때 면접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덥썩 잡았다.
놀랍게도 1차 전형을 통과해 10여 명의 학생과 함께 뉴욕으로 가서 면접시험을 볼 수 있었다. 면접시험을 본 후 다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학교에서 합격자는 나 혼자였다. 이제 북동부 지역 출신은 다섯 명만 남았고, 모두가 한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나는 최종 합격하지 못했다. 꿈의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실망보다 궁금증이 커졌다. 합격한 다른 지원자에 비해 나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일까?
그래서 물어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를 면접했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긴 편지를 썼다. 그 기회를 이용해 나의 모든 긍정적인 특징들을 다시 보여주면서 내가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있다면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내년에도 100% 확실하게 이 일에 다시 지원할 것입니다. 그러니 뭐든 내게 부족한 점을 알아내 시간을 들여 개선하고 싶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효과가 있었다. 나흘밖에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그 광고 대행사의 고위 임원이 나와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 회사의 사업 분야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분이었다. 며칠 후 그는 나를 채용했다. 알고 보니 처음부터 합격 통지를 받은 지원자는 없었다. 그 광고대행사는 거래처 담당자가 영업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업직은 거절을 승낙으로 바꾸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거절하면서 시험해보았다.
랜돌프 집안의 성공 규칙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처음으로 일하기 시작하려던 스물 한 살 때, 아버지는 손으로 쓴 우리 집안의 가르침을 건네셨다.
랜돌프 집안의 성공 규칙
- 시키는 일보다 최소한 10% 이상은 더 해라.
- 절대로 누구에게든 모르는 일에 관해 사실처럼 이야기하지 마라. 항상 조심하면서 자신을 다스려라.
- 윗사람에게든 아랫사람에게든 항상 배려하면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
- 트집을 잡거나 불평하지 마라. 언제나 진지하게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자세를 유지하라.
- 결정을 내릴 만한 근거가 있다면 결정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라.
- 가능하다면 무슨 일이든 숫자로 정리하라.
- 마음을 열어두되 끊임없이 의심하라.
- 시간을 꼭 지켜라.
넷플릭스 초창기 웹사이트 명은 키블닷컴(kibble.com)이었다. 초창기 스타트업은 이런 경우가 많다. 회사를 처음 생각할 때부터 투자받을 때, 출시할 때까지 똑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곳은 많지 않다. 이름을 정하는 게 중요한 일이어서 적당한 이름을 끝없이 찾을 때도 있다. 아마존의 원래 이름은 카다브라(Gaddabra), 트위터는 스테이터스(Status)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키블은 옛날 광고와 마케팅 격언을 떠올리면서 내가 생각해낸 이름이었다. '개가 개밥을 먹지 않는다면 광고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다' 라는 광고였다. 아무리 광고를 잘해도 제품이 부실하면 의미 없다는 뜻이다. 제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나는 키블(개밥)이라는 이름을 골랐다.
개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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