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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나를 버리다/박지성

 

나는 거의 매일 운동을 하지만 운동이란 신체 컨디션 유지를 위해 하는 것이지, 난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안 믿지만 사실이다.

 

운동은 오래전 30대 중반, 술 좋아하고 야근 많이 하는 죽어가던 직장인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기에 시작한 것이다. 

 

운동이란 내 삶의 한가지 도구라 영양제라 생각하고 할 뿐이기에, 남이 하는 운동 경기엔 관심이 없다. 내가 하는 운동과 관련된 거라면 모를까 축구, 야구 이런 재미를 위한 경기는 전혀 보지 않는다. 월드컵, 올림픽 경기 정도되는 A매치라면 가끔은 본다. 

 

그래서 박지성 하면 2002년 월드컵 때 골을 넣은 인상 선하고 잘하는 축구 선수라는 것밖엔 모르는데 이렇게 책도 쓰셨네. 

 

그의 서문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모든 시작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기대감인지, 두려움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출발을 할 때 마다 같은 주문을 되뇌곤 했습니다.

 

책을 그저 쓰기만 한게 아니라 아주 잘 썼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많았기에 남겨본다. 

 

난 지금 터널 안에 서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구장 올드 드래퍼드 모서리 끝 빨강 지붕이 얹힌 곳입니다. 경기전, 나는 항상 이곳에 서서 경기 출전을 준비합니다. 잠시 후면 몸을 부딪힐 상대편 선수들과 무언의 심리전을 벌입니다. 스스로 '그라운드에서는 내가 최고다.' 라는 주문을 걸며 승리를 다짐합니다.

 

90분 이후 결과는 어떨까?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이곳에 설 때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 서럽고 막막하던 10년 전 그때와 비슷한 두려움과 막연함에 가슴이 쿵쾅쿵쾅 뜁니다. 터널은 내가 겪어온 시련을 일깨우는 곳입니다.

 

난 끊임없이 이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이제는 끝이겠거니 하면 또다시 내 앞에는 어려운 숙제들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세상일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이 터널을 불과 20미터만 걸어나가면 7만명의 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많이 어렵게 살아왔던 박지성, 그는 그래서 겪어봤기에 세상일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멋진 성공한 사람이다. 난 맨유란 축구팀이 있었는지도 그게 영국의 팀인지도 몰랐었다. 책을 보다 보니 맨유란 팀이 엄청 잘하는 팀인가보다 알게된 정도.

 

"맨유에서 뛰기 위해서는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 난 경기마다 최고의 장면을 꾸준히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역시 해답을 일상의 철저함에서 찾고 있습니다.  온갖 기행을 일삼고 관중을 향해 '쿵푸 킥'을 날려 징계를 받은 악동이었던 에릭 칸토나는 어떻게 지금까지 사랑과 존경을 받는 맨유의 전설이 되었을까요? 그 역시 일상에 해답이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베컴이 막 1군에 올라왔을 때 자신의 영웅이었던 칸토나가 어떻게 개인 훈련을 하는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칸토나는 팀 훈련을 마치고 동료들이 돌아간 클리프 구장(캐링턴 이전 맨유 연습구장)에서 무얼 했을까요?

 

그는 볼 컨트롤과 기초적인 기술 같은, 초등학교 때 배우던 것을 반복훈련하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모습은 결국 기초에서 비롯됩니다. 

 

뛰려면 걷는 법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했던가. 이 책을 보며 박지성 말고 등장하는 축구 선수 중 유일하게 아는 선수는 베컴. 그런데 베컴도 어떻게 생긴지는 모른다. 

 

한 발씩 딛고 오르려면 패배감부터 버려야 합니다. 남들을 원망하거나 변명하는 일 따위도 버려야 합니다. 

항상 위기가 닥칠 때마다 '98퍼센트는 내게 책임이 있다.' 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내 안엣 찾다 보면 반드시 위기에서 탈출할 실마리가 보이게 마련이니까요. 그 실마리를 붙들고 꿋꿋이 길을 걷다 보면 날 괴롭히던 시련은 어느새 더 큰 선물을 안겨주곤 했습니다.

 

맨유의 영원한 주장 로이 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패배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으면 패배의 이유가 되지만, 다른 곳에서 찾으면 패자의 변명일 뿐이다."

 

이 얼마나 맛있는 글인가. 오래 숙성되어 그윽한 21년 위스키 같이 향이 넘친다. 

 

내가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곳은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가 아니라 이곳 캐링턴(맨유의 연습장)입니다. 

난 이곳에서 '유령ghost'으로 불립니다. 지독하게 훈련한다고 붙여준 별명입니다. 

 

"훈련할 때 박지성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뒤에 나타나고, 좀 있으면 또 다른 곳에 가 있다. 그는 유령 같다."

난 연습 벌레가 돼야 했습니다.

축구를 막 시작하던 무렵에는 발등 구석구석마다 3000번 이상 볼이 닿아야 감각이 생긴다는 선생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모든 훈련이 끝난 후에도 난 매일 빠짐없이 개인 훈련을 했습니다. 발 곳곳의 촉수를 곤두세워 패스의 정확성을 높이려 했습니다. 짧은 거리를 끊임없이 전력질주하며 스피드를 키웠습니다. 내가 세운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유령이라 불린 축구선수. 축구선수에게 이보다 더 좋은 비유가 있을까요? 유령처럼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사라지는 지독한 연습광 박지성.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화를 내야 할 때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앞서서는 안 되겠지만 조직이 방향성을 잃지 않으려면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퍼거슨 감독은 화를 낼 때와 내지 않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맡아 우리들에게 정신력이 약하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축구 하면 근성과 투지로 똘똘 뭉친 정신력인데, 그게 부족하다는 건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정신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헌신을 꼽았습니다. 위기 관리 능력과 근성보다도 헌신이 기본이 돼야 팀을 만드는 정신력이 만들어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유럽 축구 은어 중 '물장수warter carrier'라는 게 있습니다. 스타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헌신적인 선수를 일컫는 말입니다. 맨유가 강한 이유는 든든한 물장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축구는 슈퍼스타 1명이 뛰는 경기가 아니라 11명이 뛰는 경기라는 걸 그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오로지 승리와 패배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경기력이 좋지 않고, 실수가 많고 열정이 없었더라도 승리하면 그만입니다. 최선을 다해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패한 경기에 대해서는 마치 대표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우려를 쏟아냅니다.

 

긱스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그를 막을 수비수가 없었을 때도 열한 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그의 조국 웨일스는 월드컵에 나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날 결승골을 봅은 고정운 선배에게 기자들이 승리를 이끈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골은 나 혼자 넣은 게 아닙니다. 열한 명 모두가 넣은 것입니다."

 

 

생각의 속도

 

생각의 속도가 빨라지면 축구는 쉬워집니다. 수비수가 몰려 있는 곳에서 굳이 화려한 기술로 돌파하려고 애를 쓰기보다 빈 공간으로 툭 패스하고 다시 뛰어 볼을 받으면 더 효율적인 것이 축구입니다. 축구를 패싱 케임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난 끊임없이 뛰면서도 생각의 속도를 줄이지 않는 능력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 님.. 도를 얻으셨구나.

베이징 올림픽 때 남자 자유형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낸 박태환, 동계올림픽 피켜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세계가 놀란 경이적인 점수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낸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에 쏟아지는 중압감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스스로 즐기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저력이었습니다. 

 

 

박지성 그의 결말

 

광야에서 만나는 어떤 팀도 쉬운 상대는 없습니다.

그러나 승부를 가르는 것은 나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두렵고 떨릴 때도 있겠지만 스스로 준비가 돼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박지성이기를 희망합니다.

 

당신도 당신만의 그라운드에서 꿈을 이루길 기원하겠습니다. 

 

또 중요한 목차.

 

1장 시련 앞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본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마. 다시 일어날 거야

나는 유령이다

승리는 희생을 먹고 자란다

내가 울지 못한 이유

통닭집 사장이 부럽던 그때

개구리즙처럼 쓴 아버지 잔소리가 나를 키웠다

우정과 승부 사이,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해도

결정적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

 

 

2장 꿈을 향해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법

골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긱스에게 배운, 상처받지 않는 가슴

승리를 부르는 행운의 레시피

마음의 속도를 늦춰야 할 때가 있다

7분 빠른 퍼거슨 경의 손목시계

어머니가 물려진 헌신 유전자

호날두, 그의 플레이는 詩처럼 아름답다

무릎에서 빛나는 북두칠성

 

 

3장 걱정 마! 바로 네가 답이야

나에게 묻다. 왜 여기까지 왔는가

최고보다 유일함을 꿈꿔라

평발이라도 괜찮다, 생각의 속도를 높여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보이는게 전부라면 너무 슬프잖아

축구도 세상도 '양발잡이'를 강요하니까

주장으로 뛴다는 것

후회 없이 자신을 위해 뛰어라

누구나 한 방은 있다

 

 

4장 염원하라! 그러면 승리하리라

두 얼굴의 박지성

나만 시프트한다고 세상이 바뀔까

만족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무영검 박지성, 진검 박주영

맨유 vs 국가대표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우리의 무기

내 생애 마지막 월드컵

두려워 마, 한판 신나게 놀아보는 거야

 

 

5장 나는 소망한다 유명하지 않은 나를

여전히 길거리 떡볶이는 맛있나요?

이러다가 이혼설까지 나오겠네

내 지갑에 뭐가 들었냐고요?

사랑한다, 촌스러운 그때 나를

내게 사랑 슬럼프는 없는 걸까

나의 평범한(?) 일상

 

에필로그

서른 살 박지성이 마흔 살 박지성에게

 

역시 뭔가 잘 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잘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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